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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영블루스] 뻬치카를 아십니까?

김종해 육군중령 | 2010-01-19 11:18:40

조회 23788 | 추천 23 | 다운로드 0



겨울을 준비하는 병영은 바쁘다는 말로도 부족했다. 최전방의 초소에는 월동유(越冬油)에서 ‘1종’으로 불리는 쌀과 비상 부식 추진에 이르기까지 가히 전투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짧은 여름의 땡볕이 수그러진다 싶으면 밀물처럼 곧바로 닥쳐오는 것이 전방의 겨울이었다. 참 희한한 일이었다. 어째서 후방에는 산조차 만산이홍엽으로 흥청대고 있는데 유독 전방에만 이르게, 망설임도 없이 겨울이 몰려와 자리 잡고 앉아버리느냐는 것이다. 해야 될 일은 왜 그리도 많은지, 김장 준비에 무 저장고까지. “1인당 정확하게 1루베짜리 개인호를 판다.”생전 듣도 보도 못한 루베라는 단어가 처음 겨울을 맞는 신병들이나 막노동 아르바이트 한 번 안해 본 축들이야그게 세제곱미터의 일본식 줄임말이라는 것을 알리 만무하면서도 무작정 한 겨울 내내 자기가 먹을 무 구덩이를팠던 기억이 새록새록 돋을 것이다. 심지어 아직 채 잎이 마르기도 전인 싸릿대까지 훑어 싸리비를 만드는 일도장난이 아니었다. 거기에다 자매결연 학교 운동장을 쓸 싸리비까지 조달하자면 이웃부대의 산등성이까지 벗겨내야 겨우 할당량을 채울 지경이었다. 겨울을 버티기 위한 겨우살이 준비에는 간부 병사 가릴 겨를도 없었다.

그리고 숨을 돌릴 때쯤해서 진짜 겨울이 닥쳤다. 그 긴 야전의 겨울은 낭만과는 애당초 무관한 계절이었다. 오히려 생존의 영역에 준거하는 단어였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삭막함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임무수행과 혹한극복이라는 중첩된 상황타개의 현장에도 따스한 온기는 있었다. 80년대까지, 혹은 길게는 90년대 말까지 겨울의 병영은 그 녀석으로 인해 그나마 사람 살만한 주거지로 화할 수 있었다. 그 따스한 이름은 바로 ‘뻬치카’였다.

뻬치카(Pechka)! 사전적으로 이야기하면 러시아와 만주를 비롯한 극한(極寒)지방에서 쓰는 난방 장치로 돌, 벽돌, 진흙 따위로 만든 벽난로를 일컫는 용어. 어떤 이는 ‘페치카’라고도 부르지만 가장 어울리는 용어는 ‘뻬치카’여야 한다. 근거는 있다. 병영에 ‘뻬당’은 있었어도 ‘페당’이라는 직책과 용어는 결코, 어떤 부대에도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한국 병영의 뻬치카는 러시아와 만주의 그것과는 형태나 난방 방식 자체가 달랐다. 혹, 강변의 경치 좋은 카페 같은 곳의 벽에서 아직 소녀적 취향이 남은 신사 숙녀 분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뻬치카’를 상상한다면 “아니 올시다”이다. 그런류의 뻬치카야말로 원시적 극한지방의 뻬치카 형태다. 병영의 뻬치카는 온돌식을 가미한 말 그대로 획기적 발명품이었다.

보통 30명 단위의 소대 막사를 기준으로 1개 정도를 설비하는데 내무반(지금은 생활관으로 부른다) 한켠에 거의 침상의 세로길이 크기만 한 2세제곱미터 정도로 설치되었다. 원시적 뻬치카는 내부에서 직접 불을 지피지만 병영 뻬치카는 내무반 밖에 화구가 설치되어 있었다. 원리는 밖에서 지핀 불기가 뻬치카의 불길을 따라 순환하며 뻬치카를 구들처럼 덥히고 거기에서 발산하는 열로 내무반을 따뜻하게 만들었던 것이었다. 그러므로 뻬치카가 자리한 내무실의 바깥이 뻬치카의 화구자리요 뻬당들의 일터였다.

‘뻬당’이란 오묘한 발음의 용어는 ‘뻬치카 당번’의 줄임말이다. 뻬치카 당번이야말로 ‘짬밥’의 경륜을 의미하는 바로미터였다. 물론 최상급 고참은 뻬당직을 수행하지 않는다. 간부들의 눈이 없을라치면 누런색 깔깔이를 걸치고 양지쪽에 앉아 하품이나 해대는 동물원의 늙은 사자처럼 뻬치카 옆자리에서-뻬치카의 옆자리는 순찰 나온 간부들은 물론, 지휘감독이나 순시를 나온 아주 높은 지휘관들이 내무반에 들어오면 가장 먼저 찾는 VIP 지정석이기도 했다- 느긋하게 TV시청을 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리는 계급이니 분탄검댕을 묻힐 이유가 없었다. 아니 그것보다는 정확하게 말해 뻬당을 졸업한 군번이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겠다. 아무튼 뻬당의 반열에 들어서는 순간그는 내무실의 중고참 이상의 위상을 획득했다고 봐야 하며 약간의 주의력과 토막잠을 감내할 능력만 된다면 그것 또한 훌륭한 직책이었다. 뻬당들은 모든 내무반원들의 난방을 책임진다는 중차대한 임무를 수행함으로 인해그 외의 어떤 임무도 우선순위에서 밀리게 되어 있었고 심지어 단체 얼차려까지도 열외였다. 당연히 불침번, 교육훈련은 물론 그 어떤 사역에도 동원되지 않는 특권적 지위를 향유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긴 겨울 내내 뻬당들의 진짜 얼굴(요즈음 인터넷 용어로 ‘생얼’)을 확인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항상 막장에서 금방 나온 채탄부같은 검은 얼굴과 대물림이 되었던 뻬당복의 검게 반질거리는 -결코 늦은 봄날 역 대합실에 쓰러져 있는 노숙자의 묵은 잠바에 뒤지지 않는- 그 헌신의 상징으로 말미암아서였기 때문이다. 그 대가는 엄청난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생사를 가를 만큼의 신중과 고도의 노하우를 가져야만 임무수행이 가능하기도 했다. 병사들이 직접 손으로 벽돌과 흙, 또는 시멘트로 만들었기 때문에 뻬치카에 따라 최상의 열효율을 내기 위한 여건은 각각 달랐다. 어떤 내무반은 지글지글 끓고 있는가 하면 어떤 내무반은 죽어라 때도 물에 빠진 놈 콧등처럼 냉랭했던 것이다. 그러나 뻬치카의 부실을 탓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오로지 뻬당의 능력 탓이었다.

뻬당들은 뻬치카의 ‘성능’이 아니라 ‘성깔’을 알아야 길들일 수 있었고 그 뻬치카가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도록 관리할 수 있었다. 그렇게 보면 뻬당 탓을 하는 내무반원들의 원성도 영 억지만은 아니었단 이야기가 된다. 뻬치카에는 보통 11월 중순 어간에 불을 지피면 이듬해 4월 중순까지 탄을 올린다. 하지만 뻬치카에 탄을 마냥 올릴 수도 없었다. 보급된 탄은 한정되어 있었고 수요는 무한대, 시그마로 발산하고 있었으니 수요와 공급의 양을 조절하지 못하면 꽃샘추위에 동사할 지경이 되기도 했으니 정해진 양으로 최대의 효과를 창출해야 하는 능력이야말로 진정한 뻬당의 능력이었다. 이 대목에서 분탄창고 털이 경험을 보유한 노병들도 상당하리라 여겨진다. 뻬치카의 성능을 좌우하는 가장 큰 요인은 당연히 연료의 질이다. 그 중 분탄과 황토의 비율, 물의 양 등 원자재의 혼합능력이 첫 번째 요인이된다.

통상 뻬치카의 연료로는 분탄과 황토 혹은 마사토를 9:1 비율로 배합하여 사용했다. 그 과정 또한 오묘하다. 단순하게 설명하면 분탄창고에 그득 쌓인 분탄을 화구로 가져와 밀가루 반죽처럼 이긴 다음 삽으로 적당히 떠서뻬치카에 밀어 넣고 일정한 두께로 평탄하게 한 후 구공탄 구멍처럼 구멍을 숭숭 뚫어 놓으면 된다. 그러나 이게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부대에 따라서는 분탄 따로 황토 따로 보관했다가 그때그때마다 믹서해서 사용하는 부대도 있고, 반죽한 재료를 틀에 넣고 조개탄처럼 만들어 사용하기도 했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석탄반죽을 조금씩 올려 석탄 덩어리를 불덩어리로 만든 뒤 다시 석탄반죽을 그 위에 모두 덮고 끝부분에 불구멍을 하나 정도만뚫어 놓으면 불길이 그 구멍으로 쏟아져 나오면서 뻬치카 안으로 빨려 들게도 한다. 어떤 상태로 불을 지피던 씨앗불의 강도를 정확하게 측정하여 -물론, 어림짐작일 뿐이다- 가장 적당량을 밀어 넣어야만 불이 꺼지지 않고 한겨울을 온전히 날 수 있었던 것이다. 불씨를 꺼뜨리면 화목으로 다시 밑불을 지핀 후 새로 피워야 했기 때문에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이 일련의 행위야말로 시간과 물질과 인간이 완벽한 삼위일체를 이룰 때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는 예술이었다. 뻬치카의 불 지피는 방법이야말로 도제식으로 전수되는 그 내무반만의 독특한 전통이었다. 이 도제식 교육의 전수자를 일명 ‘뻬조’라고 불렀다. ‘뻬당보조’의 줄임말을 직책으로 부여받은 고참 일병급 병사는 말 그대로 간택된 차세대 난방총책이었던 것이다. 함에도 뻬당의 많은 특권 중 일부분에 한해 조금씩 간만 보았지 아직 그들은 뻬당과 같은 완전한 열외의 참맛을 즐길 수는 없었다. 그러나 야밤에 비로소 빛을 발하는, 단잠과 맞바꾼 몇 가지 특권을 향유할 수 있음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즐거움이기도 했다.

야밤에 일어나는 은밀한 즐거움 중 으뜸은 라면요리의 완성, ‘뽀글이’(뽀글이를 라면봉지에 물을 부어 만들어 먹는 라면이라고 하지만 정식으로 끓이지 않는 모든 병영라면의 대명사로 불리기도 한다)의 음미였다. 병장이나 하사쯤 되어야 끓여먹던 반합라면을 시간이나 계급과 전혀 무관하게 합법적(?)으로 끓여 먹을 수 있었고 또 윗선에서는 뻬당들의 그 즐거움을 묵인해 주는 것이 관행이었다. 혹 신임 간부가 일직을 서다가 불법으로 간주하여 무력화시켰다손 치더라도 이내 바로 끓여다 주는 일종의 뇌물인 야밤의 반합라면과 김장김치에는 같은 공범이 되지 않을 도리가 없었고 그 은밀한 즐거움을 같이 즐기지 않는 눈치 없는 뻬당이야말로 괘씸죄를 적용받아야 마땅한 인사가 되곤 했던 것이다.

 뻬당의 권한이 마침내 빛나는 광휘가 되어 번득이는 순간이 야밤의 뽀글이였던 것이다. 혹자는 반합 속
에 라면 3개를 끓일 수 있다고도 했고 또 어떤 이는 5개까지도 끓인다고도 했다. 아마 라면죽 수준이었을 것이다. 뻬치카에 끓이는 반합라면은 엄청난 전방위 화력에 힘입어 반합을 화구에 투입하기 바쁘게 끓기 시작했고라면 2개(당시 군대라면은 한 봉지에 2개씩 들어 있었음)를 끓이는 시간은 5분이면 충분했다. 뿐만 아니다. 반합에 건빵과 부속품인 별사탕까지 넣어 만든 건빵탕은 선험적으로는 건빵이 풀려 풀죽처럼 될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 쫄깃한 건빵이 온전한 모양을 갖춘 채 달싹하고 고소한 향내를 풍기며 홰를 동하게 했다. 뻬당이 라면이나 건빵을 끓이는 시간과 일치된 불침번도 그날만큼은 결코 지루한 불침번은 아니었다. 기꺼이 야밤의 만찬에 동참할 수 있었으므로.

그러나 진짜 내무반의 불침번은 십자매였다. 내무반마다 뻬치카 옆 새장에서 밤낮으로 병사들을 지키던 이 앙증맞은 십자매는 결코 정서순화를 위한 애완용이 아니었다. 분탄을 때는 뻬치카의 특성상 균열에 따른 가스 유출은 내무반 병사 전원을 위험하게도 만들었다. 그래서 막장 탄부가 십자매를 들고 갱도에 들어가듯 바로 그렇게목숨을 바쳐 가스를 감지해 내던 가스감지기였던 것이다. 가스에 민감한 십자매의 슬픈 운명으로 말미암아 병사들의 안녕을 담보할 수 있었다. 함에도 병사들은 그러려니 했다. 간혹 여린 마음을 가진 병사가 눈에 띄면 십자매 사료담당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뻬치카와 뻬당과 십자매, 그리고 분탄은 이제 없다. 기록상으로는 홍천의 시동에 위치한 모 대대가 1999년까지 뻬치카를 땐 기록이 남아 있으며 그 후로는 전설이 되었다. 십자매의 애처로운 눈길을 찬찬히 봐주지 못한 메마름이 가슴 아프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뻬치카의 따스함은 추억으로 남아 있다. 빼치카야말로 삭풍 속에서도 대한민국 군대의 전투력을 보존한 일등공신임을 부정할 수 없다. 대한민국 군대의 겨울은 바로 뻬치카와 함께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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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3]

  • 의정부 파견지에서 뻬당 조수를 하다가 부대복귀명령이 나는 바람에 한 해 뻬당을 마무리를 못한 일인입니다.
    너무 자세한 설명입니다만 추가하면 겨울에 이 뻬치카가 없었으면 목욕을 못해서 병사들 모두 피부병(옴)에 걸렸을 것 같네요.
    그리고 이 뻬치카를 때는 내무반에는 이 주머니가 없었지요. 탄에서 나는 가스가 이를 제거 했지요.
    탄갈이는 주로 점호시간에 맞추어 이루어집니다.(사수가 아무에게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ㅋㅋㅋ)
    최고의 혜택은 모든 집합에서 열외이고.....
    최고의 별미는 취사병에게 돼지 껍데기 얻어다가 공구리삽(끝이 편편한 삽)을 황토에 적당히 문질러 털어서 그위에 돼지 껍데기 올려놓고 3-4초면 지글지글......담치기 해서 사온 소주를 동기와 같이 한잔 먹고 익은 되지 껍데기 굵은 소금 찍어 먹는 것이 최고 였습니다.
  • 의정부 파견지에서 뻬당 조수를 하다가 부대복귀명령이 나는 바람에 한 해 뻬당을 마무리를 못한 일인입니다.
    너무 자세한 설명입니다만 추가하면 겨울에 이 뻬치카가 없었으면 목욕을 못해서 병사들 모두 피부병(옴)에 걸렸을 것 같네요.
    그리고 이 뻬치카를 때는 내무반에는 이 주머니가 없었지요. 탄에서 나는 가스가 이를 제거 했지요.
    탄갈이는 주로 점호시간에 맞추어 이루어집니다.(사수가 아무에게 말하지 말라고 했는데....ㅋㅋㅋ)
    최고의 혜택은 모든 집합에서 열외이고.....
    최고의 별미는 취사병에게 돼지 껍데기 얻어다가 공구리삽(끝이 편편한 삽)을 황토에 적당히 문질러 털어서 그위에 돼지 껍데기 올려놓고 3-4초면 지글지글......담치기 해서 사온 소주를 동기와 같이 한잔 먹고 익은 되지 껍데기 굵은 소금 찍어 먹는 것이 최고 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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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_우 -예 ,,,,,,,,,빼당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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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0년대초 강원 화천 이기자에서 뻬당인 동기가 끓여주던 반합라면과 두모금에 털어놓던 경월이 한병 크.. 벌써 20여년이 되어가네요(사창리는 잘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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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뻬치카의 추억이 떠오르네요 제가 근무할때도 일부 신막사가 있었지만 뻬치카 사용하는 내무반이 훨씬 따뜻했구요 무엇보다 특혜가 많은 뻬당보직이 좋았던것 같네요 당씨 뻬당은 고참의 특별보직으로서 모든 훈련과 집합 면제외에도 목욕탕을 언제던지 사용할수있는 권한이 있었고 언제던지 라면을 끓여먹을수있는 막강한 파워를 가지고 있었지요 그리고 분탄작업할때는 병력까지 차출할수 있는 권한도 있었구요 뻬치카 옆자리에 모포깔고 누워있을때가 가장 편안했던것으로 지금도 그당시가 떠오르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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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9년도까지 뻬치카를 사용했다니,고생했을 후배들 생각에 아무리 지나간 추억이라도 마음이 좋지는 않네요.11사 일명 젓가락이라고도 하고 발바닥 이라고도 하고, 지나간 시간 추억해보면 힘들었지만 나름대로 소중했던 기억들입니다.
    13연대 훈련병시절 뻬당을 본의 아니게 맡게 되어 분탄 나르다가 넘어져 허리를 다쳤지만 제때 치료를 받지못해 결국 원주 통합병원까지 가서 대수술하고 4개월간 병원신세 지고 수방사 병력이었지만 수방사는 그것때문에 가지도 못하고 11사에 눌러앉게 되었더랬지요.
    군시절 기억이 좋지 않은것이 많아서 제대하고도 한참동안은 홍천 근처에도 안갔던 적이 있었습니다.
    벌써 그시절도 20년이 넘어 가는군요.사는것이 바뿌다보니 잊고 지냈던 사람들이 생각 나네요.
    다들 잘지내고 있을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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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개월 정도의 내무반 생활을 하면서 빼당의 중요성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후 간부순찰이라는 이름으로 겨울철 부대를 돌면서 살펴보다가도 빼당들의 경우 그들만의 간식을 먹는 일을 보더라도 그냥 웃으면서 눈치껏 먹으라는 말과 함께 수고하라는 격려를 건네던 기억이 납니다. 빼치가 위에 설치된 철망 위에 올려 놓은 빨래들은 반나절이면 바짝 말라버리던데 화력조절 기술의 중요성에는 정말 공감이 갑니다. 자대로 배치되기 직전에 부대 적응차원에서 타 중대에서 1개월 생활할 때 특수관물대에서 생활했었는데 참 정말 따뜻했습니다. 하하~ 이젠 전설이 된 빼치카군요!! 그때 그 시절의 추억이 떠오릅니다. ^^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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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탄을 황토흙과 석어 반죽하여 뻬치카 안에 올려 덮고 거기에 구멍을 내는데,
    위아래가 뻥뚫리게 구멍을 내면 분탄에 불이 붙지 않더라구요.
    GOP에 있을 때 뻬치카를 사용했었는데 그때 뻬당들 정말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심란했지요...
    개털모자에 깔깔이, 다헤어진 야상에 활동화, 얼굴은 온통 분탄을 칠하고,
    잠은 뻬치카 옆에서 기대 자거나 아니면 밖에 화구에 앉아서 졸거나..
    그러다가 불꺼뜨리면 되지는 날이었죠, 뻬당들...
    가끔 그들을 도와주느라고 분탄창고에서 들것에 분탄과 황토흙을 싣고왔는데 그것도 되게 무겄웠는데.. 정말 그립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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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대 5개월 앞두고 빼당을 했었죠..
    이기자 77연대본부중대에서..말년을 뜨뜻하고 게으르게 보낸 경험이 있네요..
    갈탄을 밑쪽에 무연탄과 탄재를 적정량 섞어 말린 뭉치탄은 위쪽에..
    적절한 화력의 배치시간을 조절하는게 최대 난코스였었던..

    베치카 두군데를 담당하는지라..
    모든 훈련과 점호 및 근무에 열외...
    말년휴가와 빼당근무로 받은 휴가증..그리고 또 하나의 휴가증을 붙여
    장장 22일간의 마지막휴가를 즐겼던 옛 추억이 생각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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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빼당... 저 빼당때에는 제위 무수히 많은 고참들이 부대 인근 나무들을 싸그리 베어서 빼치카에 넣는바람에 1km이상 걸어서 인근 야산에서 나무 잘라다가 장작팼었는데... 신병때 지름 한 30센치 되는 반 썩은 나무 자르기로 근무안서기했었는데 그때 고참이 너해봐라고 반강제로 시켰는데 일등먹었던 기억이나네요~ 숨이차서 10분간 헥헥그렸더라는... 5사단 통신대 95년1월 제대였는데 99년도정도면 그때도 있었을듯 합니다만...그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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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2년 28사 신병교육대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빼치카를 봤읍죠~
    그때 그게....사용을 했는지 않했는지는 기억이 잘......하여간, 따뜻했던것 같읍니다.
    워낙 쫄았던 시절이라, 공구리로 만든 난로 보단, 조교의 눈매가 가 더 활활 타올랐으니까요~
    그후 군생활에서는 스팀 난방으로만 사용 했었는데, 99년까지 사용한 부대가 있었다니...
    고생스런 부대였나 보다 라는 생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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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전에는 시골에서 담배농사 짓다온 병사들에게 빼당을 시켰습니다.
    담배건조장이 빼치카랑 연료가 똑같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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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뻬당.....ㅎㅎ 제가 하필 겨울에 짬밥이 그렇게 되서 뻬당을 했었지요....6개월...ㅋㅋ 뻬당은
    대부분 상병때 거의 했지요 전문가적인 기술(?)이 좀 있어야 하기때문에...
    저는 능평리에 있었는데 시동쪽은 좀 외져서 거기 근무하는 사람들 같은 젓가락이라 해도 더 힘들었을겁니다 홍천으로 외박도 못나오고...젓가락중 제일좋은곳은 육군항공대 있는곳에 거기는 20연......
    생각납니다....엄청나게 걸어다니던 그 시절.........초전박살......화랑...........^^* 80년초......홍천의 겨울 참 혹독하게 추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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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혹시 99년도쯤에 홍천 제1야전수송교육단 계셨던분 안계시나요 전 5주교육 받았는데 그때거기가 빼치카 썼습니다 대한민국에서 거기가 그때당시유일하게 빼치카 썼다던데 암튼 온도조절 잘못하면 다감기걸리고 썩은 막사 침낭도없었고 1월에 모포도 모잘라 빨리챙기지않으면 옷다껴입고자야했고 인원이많아 칼잠자고 잠시나마 예전군생활 체험해봤습니다 자대도 별거없더만요 1군지역 뻔하지요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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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뻬치카당번을 자격조건 중에선 잘 짱박히는 기술이 제 일의 조건입니다. 부대비상상황이나 부대 분위기 좋지 않을 때 뻬당 그림자라도 보신분 이중에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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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뻬치카 탄을 하루에 두번인가 갈아야 하는걸로 기억되는데, 왜 하필 일석점호시간이 탄을 가는 시간이었는지 지금도 도저히 아리송합니다.ㅋㅋ 점호대열로 침상 삼선에 도열해 있으면 침묵을 깨고..드르륵~~탄 긁어내는 소리.ㅌ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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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도 빼치카 라면 약간의 경험이 있습니다만... 어쨌든 글 참 맛깔나게 잘 쓰시네요. 글 을 읽으면서 그 때 그 시절도 돌아간 것 같은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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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야, 정말 간만에들어보는 '빼치카'. 저희 부대에서는 빼당은 없었으니 모르겠네요. 그렇지만, 그 빼치카에 대한 추억은 정말 나름 즐거운 기억이 많았습니다. 오늘 점심먹고 좋은 글을 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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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말 정겹게 읽었습니다. 말로만 듣던 뻬치카에 그런 많은 이야기가 있군요. 그냥 연탄처럼 때는게 아니었어요. '간택' 웃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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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량으로 부려놓은 분탄을 분탄창고에 집어넣는 일도 힘든일 이었죠...구연대에 근무하신 분이 있구만요...반갑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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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쪽팔림도 잠시 즉시 일어나 상황을 장악하려는 강한 의지로 분연히 일으키는데 순간 내소대 고참병인
    박병장의 목소리 들리는것이었다 빼당 이쌔끼 어디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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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 이렇게 내군생활은 쫑나는구나 하는 찰나 상황실한쪽구석에 있는 임시탄약고 및 무기고열쇠를 폼나게 X반도에 결속된 탄띠옆구리에 단단히 꿰차고는 내무실문을 박차고 안으로 들어갔으나 매캐한 냄새와 짙은 연기속에서 허둥대던 대원에게 부딛혀 넘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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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빼당!!!
    철원벌 강추위에 온몸이 오그라들던 25년 어느겨울날 내무반에서 수류탄 투척사건이 일어났다
    상황실(당시내무반은 상황실을 가운데두고 내무반이 양날개로 펼쳐진 일명 깡통막사였다 )에서
    거의 실신상태로 당직사관을 하던 나는 갑자기 펑하는 폭음과 함께 짙은 연기가 내무반문을 통하여
    나에게 덮쳐오는 상황에 직면하였다 옆에서 같이 실신중이던 당직하사 당직병역시 사태파악이 않되기는 마찬가지로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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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뻬당~! 크~! 그리운 단어네요.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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